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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k WooKyu
大阪1号店

朴禹圭(Park)

習作 - vol.02 - 韓国語

2012/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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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에 대하여

 

“여행”이라는 단어가 우리에게 보통명사인 것은 나도 알고 있다. 하지만 지금 나의 심정으로 “여행”을 생각해 본다면 추상적인 의미가 더 크게 다가온다. 사실, 지금 비행기의 안에서 출발을 기다리고 있다. 오전에 10년 전 즐겨 듣던 재즈음악을 듣고 맥심이 아닌 원두커피가 여과지를 통과 하면서 풍기는 향기를 맡으며 여행 짐을 싸고 있을 때의 감정이 지금은 많이 시들어 있다. 오히려 내가 오전에 느꼈던 감정을 다른 사람의 얼굴표정과 웃음소리에서 느낀다. 지금의 나는 여행지에서 느끼게 될 새로움과 두려움, 피로, 여행지에 대한 의무감등의 생각이 머리를 채운다.

여기까지 쓰고 한숨 자고 일어 났더니 기내식을 준다. 기내식 치고는 꽤 훌륭하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엉덩이가 슬슬 아파온다. 이렇게 좁고 불편한 의자에서 1시간 더 있어야 한다는 생각을 하니 아까 언급한 피로감이 밀려온다. 하지만 이 여행을 돌아올 때는 지금의 피로감과는 비교도 안 되는 피로감과 함께 할 것이다. 이러한 상황은 “여행”에서 얻고자 하는 즐거움과는 거리가 있어 보인다. 다시 오늘 오전으로 돌아가보면 그때는 두려움, 피로감, 의무감과는 다른 감정으로 가득 차 있었다. 그것을 단어로 굳이 표현해 보자면 “설렘”이라고 할 수 있겠다.

사랑은 어떠할까? 그녀를 나의 여자로 만들기 위하여 노력할 때는 ‘설렘’과 ‘기대’가 충만하지만 막상 나의 여자가 되면 그것들은 어디론가 증발해 버린다. 다시 말하면 ‘설렘’과 ‘기대’의 감정이 사랑이라고 믿어 의심하지 않고 목숨도 불사하지만 사랑을 얻었다고 생각되는 순간 그러한 감정은 사라진다. 그렇다면 그러한 감정과 사랑은 반비례하는 것일까? 아니면 처음부터 전혀 관계가 없었던 것일까?

“여행의 진정한 즐거움은 여행을 준비하는데 있다.” 라고 누군가 말했다고 한다. 그렇다면 사랑도 사랑을 얻기 위해서 행동하는 단계가 사랑의 진정한 행복일까? 그러한 행동으로 얻어지는 즐거움이 매우 크다는 것은 인정하지만 그것이 진정한 행복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지금도 아름다운 여성을 보면 가슴이 뛰지만 그것이 사랑과는 전혀 관계없다는 것을 알 정도의 나이가 되었다.

그렇다면 ‘설렘’의 단계에서 여행의 즐거움을 느끼는 나는 아직 ‘여행의 즐거움’을 모르고 있는 것은 아닐까? 사랑을 부르짖으며 새로운 이성을 찾아 헤매는 외로운 사람들처럼…

 

 

여유에 대하여

 

재작년과 작년에 다음해를 준비하면서 등장한 단어가 무엇이었을까 상상해본다.

열정

새로운 조건

경험

감각

감성

자극

고통

소통

관계

공감

즐거움

평등

투명성

변화

여유……

그 중에서도 ‘여유’라는 말이 가장 많이 거론된 것 같다.

‘슬로건은 현재 가장 결핍되어 있는 것의 표현이다’라고 경철이 형님이 말했던 것 같이 ‘여유’가 지금 나에게 그리고 우리에게 많이 부족하고 필요하다. 그렇다면 여유가 무엇이길래 우리는 그것을 갈구하는 것일까? 단순히 집에서 가족과 편안히 먹고 자는 것을 말하는 것일까? 그것이라고 말하기에는 무언가 많이 부족함이 느껴진다.

그래서 여유와 관계가 있어 보이는 단어와의 관계를 생각해 봄으로써 여유를 생각해 보자. 반의어인지 유의어인지조차 모호한 ‘나태’와는 어떤 차이가 있을까? 아무 목적도 의미도 그리고 결과도 없는 행위를 나태라고 생각해보면 어떨까? 그런 것 같다. 그렇지만 어떠한 여유는 그 자체만을 바라볼 경우 목적이 없으며 특별한 의미도 없고 눈에 뛰는 성과가 없는 경우도 있는 것과 같이 이 두 단어가 교집합을 가지고 있는 것이라고 생각해 볼 수도 있겠다. 그럼, 결정적인 차이점은 무엇일까? 그 두 가지의 결정적인 차이를 가르는 단어를 ‘치열함’이라고 정의하면 어떨까?

나태는 바다에 내리는 빗방울처럼 치열함과는 관계없는 것이고,

여유는 논밭에 내리는 단비 같은 것이며 치열함 속에 묻어있는 작은 오아시스 같은 곳이라고…

 

 

추상에 대하여

 

추상명사에 대한 글을 쓰라고 계속 추상명사를 찾고 있는데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추상명사가 무엇일까?

물론 추상적인 명사를 추상명사라고 한다. 정말로 단순화해서 표현한다면 5감, 즉 보고 듣고 냄새 맡고 맛보고 느끼는 이외의 행태를 단어로 표현한 것이라고 말할 수 있겠다. 하지만 불분명한 경우도 존재한다. 앞서 말한 여행이 그렇다. 누구도 여행을 추상명사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신체적으로 느끼는 행태의 단어라고 생각되는 것 같다. 그렇지만 나의 이미지에서 그것은 일반명사 또는 보통명사라기 보다는 추상명사에 더 가까운 느낌으로 다가온다. 나에게 여행은 추상적이다. 그것은 몸으로 느끼는 것이 아니라 몸 이외의 것들이 미묘하게 흔들리는 것으로 느껴진다. 이렇듯 나에게 추상명사의 경계는 모호하다. 물론 사과를 보고 추상명사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그렇다면 나에게 있어서 일반명사와 추상명사의 경계는 어디일까? 그냥 내 맘이다.  성의 없는 결론이지만 너무 주관적이어서 일일이 나열하기가 힘들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내 맘으로 하기로 했다.

근대 여행이 원래 ‘추상명사’이면 어떻게 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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