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大宮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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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サルトル」 知識人の擁護 第二、三章

投稿日:2012/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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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ある昔、中国に武器を売っていた商人がいた。


彼が売る矛は世の中のどの盾でも突き破れると矛の鋭さと強さを強調していた。 そして彼が売る盾はどの武器からでも突き破れないと話していた。しかしある日、道を歩いていた人が「この矛でこの盾を突き破るためにはどうすればいいのですか?」という質問を受けて自分の矛と盾の矛盾について悟るようになる。
このように矛盾という言葉は「不合理的」という意味を含めている。しかし哲学で言っている矛盾とはそういう意味ではなく、ある意味では総合対立しながら、ある反面では総合依存関係で統一されてある二つ物の関係を言っている。全ての物事が変化する根本的な原因はそのもの内部にある矛盾だ。内的矛盾は変化の根拠であり、外的な原因は変化の条件、外的な原因は内的根拠を通して作用する。


今の時代の最大の矛盾というのは雇用に支配された、二重構造である。資本主義歴史自体が高度生産力の為の「人間本来性」の喪失の歴史である。
人間は物質を手に入れた分だけ、人間が主体的な精神的な実態として自分自身を認識するのは人間本来性を放棄する現代社会が落ちいた矛盾の本質である。
人間は誰でも不完全ある為、誰もが矛盾のなかに陥るのではないか。明確な信念が無い自分も矛盾の固まりであると思う。


自分自身の矛盾とはなにか?


昨日の自分よりより変化発展しようとする自分自身と怠慢で楽しようとする自分。
周りの人たちには原理、原則を主張しながら自分にはゆるい基準で自分を合理化する自分。
周りの人たちには良く見せられるよう気にしながら、本当に大事な自分の家族にはどういう夫で、どういうパパで映っているのだろうか?
自分の人生をどう生きていこうとする明確なビジョンとそれを実践する為の自分の行動指針と絶えない実践、そして反省する謙虚なしせいがなければ、人間はだれでも矛盾している自分の言行と自己合理化に陥り生涯を送ることになるだろう。


社会と自分の関係の中での矛盾とはなにか?


現在日本で一番話題になっている原発問題を良く考えてみると、社会と自分の関係の中で大きな矛盾に気づく。
今日本では54機の原子炉があり、世界では第3位の原発保有国である。いつも日本のテレビ、教科書は原発は安全だと主張して来てた。 
現代文明の恩恵をうけながら、文明を満喫する僕らは普段には何のためらいもなく電気を使用しまくり、CO2の排出に後押しをして来た当事者ではないだろうか?

昔みたいに扇風機、エアコンのような冷房、暖房が無い時代には様々な生活の知恵を絞り暑さをしのぎったり、寒さに耐えてきたが、現代社会では不必要な空調から始め、町を照らす無駄な照明が不夜城を作りだしている。こんなにも電気を乱用する自分たちが、今まで関心も無かった原発に対してあだこうだ。。。言っている自体が矛盾ではないかと感じる。


電気が過剰に必要としながらいざ電気を生産することに関する環境的な負荷に関してはみんな知らん振りをしているようだ。 国民が原子力に対して無知、無関心なところもあると思うが、見えない公的な力とマスメディアの偏った情報によって国民を騙してきたのかもしらない。1000年に一度あるかどうかという巨大な自然災害の力の前で人間がいくら対策をしようとしても「想定外」の自然の力に人間ってなんて無力なんだろうと感じる。これからもどんな自然災害が起こりうるかも知らないこの状況で自分を取り囲んでいる、社会問題について正しく知り、「参与」することがいかに大事であるかということを福島の原発事故を通して気づかされた。


そして平和を維持する為の武装も大きな矛盾である。
自分の国の領土と主権をほごして、正義を実現する為に軍事力は必ず必要なものである。しかし自分国の平和を維持するための核兵器の保有は、万が一のことがあったときはその核兵器は落とされた国を不幸にさせながら、核兵器を保有している国の国民は平和で幸せに暮らすことが出来るだろうか?国の予算を軍事力に投資して、様々な実験をする人間の努力と費用などを人間の福祉に使用できるのげあれば今よりどれだけ豊かな世の中になっていくだろう。

このように自分を取り囲む様々な矛盾を通して資本主義の社会的な構造的な矛盾と人間性をどんどん失っていくことに気づく。そしたらこれらを克服、改善する方法はなにがあるだとうか?
サルトルが言っているように私達は「参与」を基盤として、みんなが知識人になり産業主義の暴走と小数により多数の搾取のような紛争に参与するべきなのか?


韓国とイタリアのような国民のデモが激しく、耐えない国は社会参与度が高い国といえるのだろうか? そしてそんな積極的な国民がいる国は、日本みたいに静かな国よりもっと幸せだったり、すこしでも矛盾が少ないといえるのだろうか?


このような矛盾を克服していく為には


まず[自分を知る事]。(哲学でいう自分自身を知ることは生涯の課題であるため、ここでは広い意味での自分を知ることではない。)


少なくとも自分がどの思想の影響を受けているのか、どんな時代を生きているのか。たとえば自分は右翼なのか左翼なのか?政治的にどの政党を支援するのかなどを立場を明確する必要があると思う。
「ソフィの世界」で主人公の女の子が様々な哲学と思想を通して、自分を知っていくように自分を知って行く過程で、自然に世界を知ることができるのではないか。
そして「知る」事が「信念」になり「行動」に結びつくのだと思う。


正しく知っているのであれば行動せずにいられるのだろうか?
行動しない信念は正しく知らないからではないのか?
行動しない信念は死んでるものと同じようなことだと思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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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무기를 팔던 중국 상인이 있었다.


그가 파는 창은 그 어떤 방패라도 꽤뚫을 수 있다고 창의 날카로움을 목소리 높여 얘기했다. 그리고 그가 파는 방패는 그 어떤 무기로부터도 공격을 받아도 구멍이 나지 않는다고 얘기했다.
하지만 어느날 지나가던 사람이 “이 창으로 이 방패를 뚫으려면 어떻게 하면되냐?”라는 질문을 받고 자신의 창과 방패의 모순에 대해서 깨닫게 된다.


이렇듯 矛盾이라는 말은 ‘불합리한’이라는 의미를 포함하고 있다.
하지만 철학에서 말하는 모순이란 한편으로는 상호 대립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상호 의존관계로 통일되어 있는 두 사물의 관계를 말한다.
모든 사물이 변화하는 근본 원인은 그 사물 내부에 있는 내적 모순이다. 내적 모순은 변화의 근거이며, 외적원인은 변화의 조건, 외적원인은 내적 근거를 거쳐서 비로소 작용한다.


우리시대의 최대의 모순은 고용에 결박된 삶의 이중구조이다.
자본주의 역사 자체가 고도 생산력을 위한 [인간의 본래성] 상실의 역사이다.


물질을 얻은 그 만큼 인간이 주체적인 정신적 실체로 자기 자신을 인식하는 것은 인간의 본래성을 포기하는 현대 사회가 처한 모순의 본질이다.
인간은 누구나 불완전하기에 누구나다 모순속에 빠져 있다. 명확한 신념이 없는 나 자신도 모순 덩어리이다.


내자신의 모순은 무엇일까?


어제의 나보다 더욱더 변화 발전하려는 내 자신과 나태래지려는 나.
주변 사람들에게는 원리, 원칙을 주장하며 자신에게는 느슨한 기준으로 합리화 시키는 나.


주변사람들에게는 잘보이려 하면서, 정작 소중한 나의 가족들에게는 어떤 남편으로, 어떤 아빠로 비춰지고 있을까?
자신의 삶을 어떻게 살아가고자 하는 확고한 비젼과 그를 실천하기위한 자신의 행동지침과 끊임없는 실천, 그리고 반성하는 겸손함이 없다면 인간은 모순된 언행과 자기합리화에 빠져 평생을 지내게 될것이다.


사회와 내 자신과의 관계속의 모순은 무엇일까?
현재 일본에서 가장 잇슈가 되고 있는 원자력 문제를 곰곰히 생각해 보면, 사회와 내 자신과의 관계속에서 큰 모순점을 발견 할 수 있다.
현재 일본에서는 54기의 원자로가 있다고 한다. 항상 테레비에서도 교과서에서도 안전하다고 주장했었다. 현대 문명의 이기의 혜택을 받아가며, 문명을 만끼하며 우리는 평소에 아무런 거리낌 없이 전기를 사용하며 이산화 탄소를 지구에 방출하는 행위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선풍기, 에어콘, 난방기구가 없던 시절에는 여러가지 생활의 지혜를 짜내어 더위를 이기고, 추위를 이기려 했었지만, 현대사회는 불필요한 공조부터 불필요한 현란한 조명들이 불야성을 이루고 있다. 이렇게 전기를 남용하는 우리들 자신부터가 원자력에대해 왈가불가 하는 자체가 큰 모순이다.
전기는 지나칠 정도로 필요로 하면서 정작 전기 생산에 관한 환경적 부하에 대해서는 모두 나몰라라 하는 식이다. 국민들이 원자력에 대해서 무지하고, 무관심한 부분도 물론 있었겠지만, 보이지 않는 언론의 힘과 공권력의 힘으로 국민들을 속여온 것이 현 일본정부의 상황이다.
천년에 한번 있을까 말까한 거대한 자연 재해의 힘 앞에서 인간이 아무리 발버둥 쳐봤자, 인간이라는 미미한 존재의 한계를 느낄수 밖에 없지만 앞으로도 어떤 큰 재해가 닥칠지 모르는 상황에서 나 자신을 둘러싼 사회문제에 대해서 알고, 참여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가를 후쿠시마의 원전 사고를 통해 깨닫게 된다.


그리고 평화를 유지하기 위한 무장도 큰 모순이다.
자국민의 영토와 주권을 보호하고, 정의를 실현하기 위해서 군사력은 필수불가결한 요소이다.
하지만 자기나라의 평화를 유지하기 위한 핵무기의 보유는 유사시에 그 핵무기가 떨어진 나라는 불행하게 만들면서까지의 만행을 저지르며 과연 핵 보유국의 시민들은 평화롭게 살수 있을까?라는 의문을 가지게 된다.
국가 예산을 핵무기에 개발에 투자하고, 실험하는 인간의 노력과 비용등을 인간 복지에 사용한다면 지금보다 얼마나 더 풍요로운 세상이 될수 있을까?


이렇듯 모순의 규모가 크던 작던 간에 여러가지 모순들을 통해 자본주의 사회의 구조적 모순과 인간소외의 병폐를 발견하게 된다. 그러면 이를 극복, 개선하기 위한 방법은 무엇일까?


사르트르가 말하는 대로 우리는 “참여”라는 말을 기반으로, 모두가 지식인이 되어 산업자본의 폭주와 소수에 의한 다수의 착취와 같은 갈등과 분쟁에 참여 해야 할까?


한국과 이탈리아와 같이 항상 데모가 끊이지 않는 나라들이 과연 사회에 참여도가 높은 나라라고 할수 있을까? 그리고 그런 적극적인 국민들이 있는 나라들이 일본처럼 조용한 나라보다 더 행복하거나 조금이라도 덜 모순적이라고 말할수 있을까?


이러한 모순을 극복하기 위한 방법은


-자신을 아는것. (철학에서 말하는 자신을 아는 것은 평생의 과제이기에 넓은 의미보다는 협소한 의미.) 자신이 어떠한 사상의 영향을 받고 있고, 어떤 시대에 살고있는지. 예를 들어 우익 인지, 좌익인지? 어떤 정당을 옹호하는지 등의 입장을 명확이 할 필요가 있다.
소피의 세계에서 주인공 여자아이가 여러가지 철학 사상을 통해, 자신을 알아가는 것처럼 자신을 알아가려 하다 보면 자연적으로 세상에 대해서 알아가게 되는것이 아닐까?
-앎이 신념이 되어 행동으로 연결된다.
진정으로 알고 있다면 행동하지 않고 가만히 있을수 있을까?

행동하지 않는 신념은 제대로 알지 못하기 때문이지 않을까?

행동하지 않는 신념은 죽은것이나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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